인문,철학,문학

『스토너』 John Williams (8~12p)

mam_mon 2025. 4. 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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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스토너는 1891년에 미주리 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미주리 대학이 있는 컬럼비아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젊은 나이였지만 (아버지는 스물다섯 살, 어머니는 겨우 스무 살),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부모는 항상 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였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은 색이 연하고 흐릿했으며, 뒤로 똑바로 빗어넘겨 틀어올린 가느다란 반백의 머리카락 때문에 눈 주위의 잔주름이 한층 도드라져 보였다.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섯 살 때는 앙상하게 마른 암소들의 젖을 짜고, 집에서 몇 야드 떨어진 우리로 가서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껑충한 닭들이 낳은 작은 달걀을 가져오는 일을 맡았다. 집에서 8마일 떨어진 시골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그의 하루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런저런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일들의 무게 때문에 그는 열일곱 살 때 이미 어깨가 구부정해지기 시작했다.



자식이라고는 윌리엄밖에 없어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에서 식구들을 묶어주는 것은 힘겨운 농사일뿐이었다. 저녁이 되면 세 식구는 등유 램프 한 개로 불을 밝힌 작은 부엌에 앉아 노란색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대략 한 시간 동안 들리는 소리라고는 대개 등받이가 높고 딱딱한 의자에서 식구 중 누군가가 지친 듯 몸을 움직이는 소리, 낡은 집 어딘가에서 목재가 작게 삐걱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집은 대략 정사각형 모양이었으며, 칠을 하지 않아 맨살이 드러난 포치와 출입문 주위의 목재들은 축 늘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집은 마른 땅의 색깔을 닮아갔다. 그래서 회색과 갈색 바탕에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집 안 한 편에는 길게 자리 잡은 거실과 부엌이 있었는데, 거실의 가구라고는 딱딱한 의자들과 나무토막을 잘라서 만든 탁자 몇 개가 전부였고, 식구들은 함께하는 얼마 안 되는 시간 중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냈다. 그 맞은편에 있는 두 침실에는 각각 하얗게 색칠한 철제 침대, 딱딱한 의자 하나, 램프와 세수 대야가 놓여 있는 탁자 하나가 있었다. 칠을 하지 않은 바닥 널은 간격이 고르지 않았고, 낡아서 갈라진 틈새로 끊임없이 먼지가 새어들어왔기 때문에 매일 스토너의 어머니가 비질을 했다.



스토너는 집에서 하는 허드렛일보다 조금 덜 피곤한 허드렛일을 하듯이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910년에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그는 자신이 밭일을 더 많이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이 갈수록 아버지가 점점 더 굼뜨고 약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봄의 어느 날 저녁, 아들과 함께 하루 종일 옥수수밭을 갈고 들어온 아버지가 부엌에서 아들에게 말을 꺼냈다. 이미 저녁식탁은 치워진 뒤였다.



“지난주에 군청에서 사람이 다녀갔다.”
윌리엄은 둥그런 식탁 위에 매끈하게 펼쳐진, 빨간색과 하얀색 체크무늬의 식탁보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컬럼비아에 있는 대학교에 새로운 학교가 생겼다더구나. 농과대학이라던가. 너를 거기에 보내라고 하더라. 4년이 걸린다면서.”
“4년.” 윌리엄이 말했다. “돈이 드나요?” “숙식비는 네가 일해서 충당하면 된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 어머니 사촌이 컬럼비아 바로 외곽에 살고 있으니까. 책값이나 여기저기 드는 돈은 내가 한 달에 2~3달러씩 보내줄 수 있다.”



윌리엄은 식탁보 위에 양손을 펼쳤다. 식탁보가 램프 불빛을 받아 흐릿하게 빛났다. 그는 집에서 15마일 떨어진 분빌 너머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목소리가 갈라질 것 같아서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 혼자 여기 일을 하실 수 있어요?” 그가 물었다. “네 어머니랑 둘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다. 저 위쪽에 밀을 심으면 일이 좀 줄어들겠지.” 윌리엄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어머니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해라.”
“정말로 제가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가 물었다. 반쯤은 아니라는 대답을 바라는 듯한 말투였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버지가 앉은 채 자세를 바꿨다. 그리고 못이 박인 두툼한 손가락들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의 갈라진 살갗 속에 흙이 어찌나 깊이 박혀 있는지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그는 양손을 깍지 끼고 기도하듯이 탁자에서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평생 이렇다 할 만한 학교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그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6학년을 마친 뒤 농사일을 시작했지. 젊었을 때는 학교교육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해가 갈수록 땅은 점점 건조해져서 농사짓기가 힘들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땅이 기름지지 않아. 군청 사람 말로는 농사를 짓는 새로운 방법들이 있다더구나. 대학에서 그런 걸 가르친대.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모르지. 가끔 밭일을 하다가 드는 생각이 있는데…….”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깍지 낀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니 두 손이 식탁 위로 툭 떨어졌다. “무슨 생각이냐면…….” 그는 자신의 손을 향해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는 가을에 대학에 들어가거라. 여긴 네 어머니랑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버지가 이렇게 길게 말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해 가을에 스토너는 컬럼비아로 가서 농과대학 1학년생으로 등록했다.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소개하며, 독자를 그의 내적 세계로 끌어들이는 강렬한 서막입니다. 이 부분에서 느낀 소감입니다.

담담한 서술의 힘 : 소설은 스토너의 삶을 과장 없이 담백하게 묘사합니다. 그의 평범한 출신, 대학에서의 소박한 시작, 그리고 문학에 대한 조용한 열정이 단조롭지만 진실된 톤으로 그려져요. 이 담담함이 오히려 그의 삶의 무게를 더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고독과 내면의 씨앗 : 스토너의 고독한 성향과 내면의 갈등이 이미 이 초반 페이지에서 드러납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낯선 학문의 세계로 들어선 그는, 환경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이 부분은 그의 이후 여정이 단순한 성공담이 아닐 것임을 암시합니다.

전체적으로 12페이지는 스토너라는 인물의 평범하지만 깊은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그 평범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지 기대하게 만드는 시작이었습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정말 서정적인 문장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것 같습니다. 특히 8~12페이지에서 스토너의 내면과 주변 세계를 묘사하는 문장들은 간결하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토너가 문학에 눈뜨는 순간이나 그의 소박한 배경을 그릴 때,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시처럼 여운을 남깁니다. 윌리엄스는 화려한 수사를 쓰지 않고도 일상적인 순간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하는데, 그게 스토너의 평범한 삶을 더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랫 구절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에서 스토너의 어린 시절 집을 묘사하는 부분인데, 그의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문장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섯 살 때는 앙상하게 마른 암소들의 젖을 짜고, 집에서 몇 야드 떨어진 우리로 가서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껑충한 닭들이 낳은 작은 달걀을 가져오는 일을 맡았다. 집에서 8마일 떨어진 시골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그의 하루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런저런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일들의 무게 때문에 그는 열일곱 살 때 이미 어깨가 구부정해지기 시작했다.



자식이라고는 윌리엄밖에 없어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에서 식구들을 묶어주는 것은 힘겨운 농사일뿐이었다. 저녁이 되면 세 식구는 등유 램프 한 개로 불을 밝힌 작은 부엌에 앉아 노란색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대략 한 시간 동안 들리는 소리라고는 대개 등받이가 높고 딱딱한 의자에서 식구 중 누군가가 지친 듯 몸을 움직이는 소리, 낡은 집 어딘가에서 목재가 작게 삐걱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집은 대략 정사각형 모양이었으며, 칠을 하지 않아 맨살이 드러난 포치와 출입문 주위의 목재들은 축 늘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집은 마른 땅의 색깔을 닮아갔다. 그래서 회색과 갈색 바탕에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집 안 한 편에는 길게 자리 잡은 거실과 부엌이 있었는데, 거실의 가구라고는 딱딱한 의자들과 나무토막을 잘라서 만든 탁자 몇 개가 전부였고, 식구들은 함께하는 얼마 안 되는 시간 중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냈다. 그 맞은편에 있는 두 침실에는 각각 하얗게 색칠한 철제 침대, 딱딱한 의자 하나, 램프와 세수 대야가 놓여 있는 탁자 하나가 있었다. 칠을 하지 않은 바닥 널은 간격이 고르지 않았고, 낡아서 갈라진 틈새로 끊임없이 먼지가 새어들어왔기 때문에 매일 스토너의 어머니가 비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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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디테일이 맘에 듭니다.
"칠을 하지 않아 맨살이 드러난 포치", "마른 땅의 색깔을 닮아갔다" 같은 표현은 단순히 집의 외관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의 질감과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전달해 줍니다..  집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세월과 환경에 반응하며 변해가는 모습이 느껴지는것 같지 않으신가요 ㅎ


"회색과 갈색 바탕에 하얀색 줄무늬"라는 묘사는 단조로운 색감으로 스토너 가문의 소박하고 고된 삶을 보여줍니다. 이 색채는  그들의 삶의 황량함과 단조로움을 은연중에 드러내는것 같습니다.


낡아서 갈라진 틈새로 끊임없이 먼지가 새어들어왔기 때문에 매일 스토너의 어머니가 비질을 했다"는 문장은 단순한 집안일을 묘사하면서도, 스토너의 어머니와 가족의 끊임없는 노동과 생존의 무게를 담고 있어서,  그들의 삶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띠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사실적인 톤을 유지.  "집은 마른 땅의 색깔을 닮아갔다"는 문장은 거의 시처럼 읽히지만, 그 집이 실제로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네요. 이런 균형이 윌리엄스의 문체를 특별하게 만드는데, 독자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몰입하면서도 그 세계를 사실적으로 체감하게 해줍니다. 저도 이런부분에 매력을 느낍니다..


이 집의 묘사는 스토너의 출신과 성장 배경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데,  단출한 가구, 칠하지 않은 바닥, 최소한의 물건들은 스토너 가문의 경제적·정서적 빈곤을 드러내고, 그가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과의 대조를 예고하는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배경 설명을 넘어 스토너의 삶의 뿌리와 그가 벗어나고자 하는 세계를 강렬하게 그려냅니다. 


책 구입후 한번 읽고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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